동성배우자 피부양자 지위 인정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
박한희, 김지림
2024년 7월 18일 대법원(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직장가입자의 동성 동반자를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하였다가 직권으로 취소하고 지역가입자로서 보험료를 부과한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동성 동반자에게 피부양자 지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여 원고 승소 원심판결을 확정하였다.(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 이는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의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선고 당일 원고와 대리인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법정을 찾았다.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 지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이다” 이 말이 선고되는 순간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고를 마치고는 모두가 환호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사랑이 또 이겼다”고 외쳤다. 이 날의 승리는 원고 부부만이 아닌 변화를 꿈꿔 온 모든 이들의 승리였다.
1. 소송의 경과
민변 변호사들로 구성된 ‘동성결혼 소송 변호인단’이 진행한 한국 최초의 동성혼 소송이 기각된 후, 대리인단은 이성커플과 달리 동성커플이 누릴 수 없는 여러 구체적인 권리 중에서도 동성커플이 경험하는 대표적인 차별 중 하나인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부분에 집중하여 소송을 준비하였다.
국민건강보험법 상 ‘직장가입자의 배우자’는 피부양자로 인정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내부규칙인 ‘자격관리 업무지침’을 통해 이성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2인의 인우보증서만을 제출하면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원고는 동성 배우자와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배우자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인정된 피부양자 지위를 박탈당하였다. 대리인단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성 배우자 역시 혼인신고를 할 수 없을 뿐 혼인의 의사와 실질을 가지고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또한 공단이 원고의 피부양자 자격 신청을 허가하여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였다가 그러한 사실이 언론 보도된 뒤 착오였다며 자격을 변경하며 보험료를 소급 부과한 행위는 절차적 위법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1심은 민법의 혼인법질서 상 동성 간 결합을 기존의 사실혼 개념에 포함할 수 없으며, 동성 간의 결합이 남녀 간의 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으므로 양자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헌법 상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다. 하지만 이후 2심 재판부는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성결합은 사실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므로 동성 결합 상대방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대우에 해당한다며 평등원칙위반이라고 보아 원고 승소 판결을 하였다. 사안은 피고의 상고로 인해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되었다.
2.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 및 의의
대법원은 절차적 하자 및 평등원칙 위반의 실체적 하자를 인정한 원심의 기본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동성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전제로 공적 제도가 변화하는 가족 결합과 생활실태에 적극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더 나아간 판시를 하였다.
먼저 대법원은 공단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이자 기본권 보장의 수범자로서 지위를 갖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며 그 차별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서 제시하였다.
그리고 피부양자 제도는 시대적 흐름 및 요구에 부응하여 정책적 판단에 의해 유연하게 확대되어 왔고, 공단은 내부준칙을 개정하여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가족 구성, 부양제도 등의 현실에 맞게 실질적으로 건강보험이 필요한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게도 피부양자 지위를 부여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결국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과 그 인정범위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사실혼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성’동반자라서가 아니라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반자관계’에 있기 때문이므로, 그와 같이 동반자로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며 실질적으로 건강보험이 필요한 동성 동반자를 달리 취급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특히 김상환, 오경미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피부양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 수혜의 제공을 넘어 그 대상인 공동체나 가족관계에 대하여 사회 내에서의 존재가치를 공인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이 사건 쟁점의 중요성’임을 강조하였다. 결국 해당 판결로 동성 동반자는 한국 사회 내에서 존재가치를 법적으로 공인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이 이룬 동반자 관계가 오직 동성 간의 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건강보험제도의 보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사회와 국가의 공인된 보호를 받을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 그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라 스스로 인격을 형성하고 가정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할 권리에 대한 감내하기 어려운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중)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회보장제도 중에서도 국민건강보험법 상의 ‘피부양자제도’의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판시한 것이므로 이것이 배우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다른 사회보장제도 기타 공적 제도에 바로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동성 커플이 공적 제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를 ‘실존적 결단’으로, 동성 커플이 국가의 보호에서 배제되는 것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법 앞에 평등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에 위배되는 중대한 침해로 판단하며 그 동안 번번이 부정되어 온 동성 동반자 관계의 존재 자체를 법 앞에 인정하고 공적 제도에 편입할 필요성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만연한 차별과 혐오,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변화를 꿈꿀 수 있게 한 것이 이번 판결의 큰 의의이다. 이 소송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필요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평등원칙이라는 핵심을 짚은 2심 판결, 동성 동반자의 존재를 공인한 대법원 판결을 보며, 궁극적으로 차별을 없애고 혼인평등으로 나아갈 길이 그리 멀지 않음을 많은 이들이 느꼈다. 사랑이 끝내 이길 때까지, 성소수자들은 계속 투쟁해나갈 것이며, 민변 대리인단 역시 그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